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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 이야기

4년간의 배달대행 이야기를 마치며.

by J.YEOB 2022. 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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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부터 시작했던 배달대행은 여기서 끝마치려고 한다. 가는 곳마다 존재하는 항상 왕년에 잘 나갔고 분노조절장애 중증을 겪고 있는 회사씹 미친놈 들을 피해 이 집 저 집 방문해서 사탕 뜯어가는 미국 할로윈 파티 기간처럼, 이 회사 저 회사 문을 두들기며 유랑하며 보낸 나의 13년

 

- 그런 것도 못 참고 회사를 그만두냐며 끈기가 없다는 수많은 오지라퍼들의 쌉소리들을 견뎌내며 2018년 나는 대망의 배달대행을 만나게 되었다. 꿈도 없고 미래도 없고 당장 내일 아침도 보이지 않던 그때 그 시절, 한줄기 빛과 같이 음식 배달 하나에 2800원이라는 빛을 선사해 주었다.

 

- 정말 열심히 배달했다 정말 열심히 살았다. 배달이 끝나면 내 모습이 처량해 남몰래 울기도 했다. 배달일이 끝나면 차로 배달할 수 있는 쿠팡 플렉스도 했다 행복했다. 어느 누구의 관섭도 없이 그저 내할일만 하면서 돈을 번다는 게 여긴 누구도 나에게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

 

- 이곳도 정말 이상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 이긴 하지만 안 마주치면 그만이다. 나에게 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손님과 경찰뿐이다 '우리 선생님 교차로에서 신호 위반하셨습니다'


4년간 3천만 원의 은행 대출도 다 갚아버렸고 비록 내 집은 아니지만 27평의 월세집도 얻었다. 또 사고 싶은 거 있을 땐 고민 없이 사버리고 돈 걱정 없는 그런 인생이었다. '쉬고 싶을 때 쉬고 일하고 싶을 때 일하다니 얼마나 꿈만 같은 직장인가'라는 생각도 조심스레 품었었지만 직장이라고 하기엔 아직 부족한 것들이 많은 업종이다.

 

- 배달대행의 자유로움은 나에게 아주 큰 나태함을 가져다줬다 사람 잡아먹는 대출이 끝나버렸기 때문이며 할부로 질러버린 모든 결제금액을 없애버림으로써 4년 전 처음 시작했을 때처럼 간절하지가 않았다 원하던 목표를 이뤘으니 다시 그 ㅈ같던 직장생활이 하고 싶어 졌다.

 

- 사람 참 간사하고 웃긴다니까 열심히 배달하면 남부럽지 않은 월급 만들 수 있을 텐데 갑자기 찾아온 한파처럼 배달대행에 대한 관심이 얼어버렸다 추위에 떨고 싶지 않으며 더위에 녹아내리고 싶지 않았다. 더울 때 시원한 곳에서 일하고 싶고 추울 때 따뜻한 곳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어쨌든 나에겐 오토바이만 있으면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배달대행이라는 큰 보험이 하나 생겼으니 괜찮은 직장처럼 보이는 곳에 이력서를 한 두 개 넣어봤다.

 

- 최대한 육체노동이 없는 곳 대기업 하청업체가 아닌 곳 그저 세금 떼고 200을 받을 수 있는 회사에 중점을 두면서 회사를 찾아다닌 결과 나는 2021년 11월 23일부터 직장생활을 다시 시작했다 글을 쓰는 오늘은 회사 생활을 시작한 지 벌써 두 달째를 향해 달려가는 중이다. 이런 회사가 있다는 게 신기하다 하나같이 착하시며 모르면 친절하게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려준다.

 

- 어느 누구 하나도 분노조절장애가 없으며 몰라서 물어보면 천사처럼 알려들 주신다. 욕을 입에 달고 사는 꼰대 아재들이 없다는게 너무 맘에든다... 완벽한 주 5일제 근무이며 시공이 있을 땐 주말엔 현장에 나가서 일하기도 한다. 아직까지 나는 한번 있었다. 시공팀이 따로 존재하기에 일손이 부족할 때만 가끔 도와주는듯하다 회사의 주 수입원은 인터넷 판매와 현장에서 제품을 시공하는 시공비가 주 수입원이다.

 

- 나는 주로 회사 내부에서 기계 하나를 맡아서 돌리고 있는 중이다. 이 한파에 회사 내부가 따뜻해서 더울 정도이다 여름엔 또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고 일한다고 한다


예전에 파주에 금고 회사 다닐 때 있었던 일인데 그날 날씨가 영하 15도였고 일하는 현장이 내부인데 내부의 온도가 영하 10도였다. 그저 천막이 하나 쳐진 곳에서 금고 조립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현장 바닥에 얼음이 안 녹아서 금고를 들고 옮기다 그 얼음을 밟고 넘어진 기억이 있다.

 

- 금고 조립팀 현장엔 20명 정도의 직원들이 있었고 기름을 넣고 돌리는 히터가 한 개 있었다. 이 히터 가지고 아저씨들끼리 욕하면서 싸운다 왜 니들만 쓰냐 우리도 쓰자 이런 식으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시발 그깟 히터 하나 때문에 옘병 하나 더 사주면 안 되냐고 물어봤더니 네가 하는 게 뭐가 있냐고 히터를 사주겠냐고 했던 개소리가 생각났다 내가 뭘 하려면 히터가 있어야 할꺼아니냐고 영하 10도의 환경에서 맨손으로 조립일을 하라는 게 말이냐고 그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나는 그 넘어진 날 그 말을 듣고 그날 그만뒀다 그렇다 공장이라는 게 ㅈㅅ기업 공장에 젊은 사람들 안 들어온다고 죽는소리하지 마라 누가 그런데서 일하고 싶겠냐 외노자들이 판치는 곳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 어쨌든 많지 않은 월급이지만 원하고 원했던 그런 회사생활을 하고 있는 중이다. 4년간의 꿈만 같았던 배달대행을 이렇게 끝마쳤다. 현재 받는 월급은 내가 한 달 배달 대행하면서 벌던 돈의 딱 반토막이다. 그래도 괜찮다 이렇게 살고 싶고 이렇게 일하고 싶다. 잘살았다. 안 죽었다. 빚 다 갚았다. 행복했다.

 

- 언제 다시 배달을 하게 될 줄은 모르겠지만 4년간 참 즐거운 하루하루였다 전국의 모든 배달 라이더님들께 날씨가 많이 춥습니다 무리하시다 다치지 말길 기도합니다 우리는 4월까진 패딩 입어야 합니다 3천 원에 목숨 걸다 삼천세계 가지 맙시다. 행복하세요 행복했어요 언제나 응원해요 언제 또다시 배달을 하게 될진 모르겠지만 지금은 이 여유를 즐기고 싶어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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