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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으로의 초대/그저그런날들

33살 백수 박스 공장 취업 두달째

by J.YEOB 2018.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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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자퇴 후, 생산직을 전전하다가 30대에 백수가 되었다

20대 때는 공장이나 서비스직, 어디든 지원만 하면 취업이 쉬웠다. 그런데 30대가 되고 나니 어딜 가나 취업이 어렵다. 기술 하나 없는 고졸 인생이란 게 그렇다. 몇 달 동안 사람인과 잡코리아를 뒤지며 살다가, 친구가 다니고 있는 박스 회사에 겨우겨우 들어가게 됐다.

육체노동의 끝판왕, 박스 공장

여기는 정말 육체노동의 끝판왕이다. 이렇게 힘들다 보니 젊은 사람이 없고, 대부분 나이 지긋하신 분들뿐이다. 아침부터 술 한 잔씩 하시면서 일하시는데, 퇴근할 때쯤 되면 다들 만취 상태다. 그렇게 술을 드시고도 사고 안 내는 걸 보면 대단하다고 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어이가 없는 건지 모르겠다.박스 기술이 배워두면 꽤 돈이 되는 기술이라길래, 어떻게든 기술 하나 배워보겠다는 마음으로 들어왔는데… 현실은, 그냥 잡일꾼이다. 기장님들이 뭔가를 알려주려 하지 않는다. 내가 할 줄 알게 되면 젊은 나에게 자리를 뺏길 수도 있다는 이상한 생각 때문인 것 같다.

정말 버티기 힘들었던 첫 2주

첫 출근부터 2주 정도는 정말 죽을 뻔했다. 나름 생산직에서 버티던 몸이라 생각했는데, 어찌나 발바닥이 아프던지… 하루에도 몇 번씩 그만두고 도망가고 싶었다. 그래도 나를 소개해준 친구가 미안해서 버티고 버텼다.직원 수도 별로 없고, 그나마 있는 직원 중 반은 외국인 노동자였다. 그분들 일하는 걸 보니 뭔가 이상한 자극을 받았다. "저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나도 버텨보자." 그렇게 하루, 이틀 버티다 보니 조금씩 익숙해졌다.

가장 힘든 건 사람들과의 관계

생산직의 불변의 법칙이랄까. 어디를 가나 분노조절이 안 되는 사람들이 꼭 있다. 뭐, 나도 완벽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최소한 분노조절은 한다.예전 직장에서는 그런 사람들과 눈치 안 보고 싸웠는데, 여기서는 그럴 수가 없다. 친구가 소개해준 회사니까, 어쩔 수 없이 참아가며 일하고 있다.

근무시간과 잔업, 그리고 밥

근무시간은 하루 한 시간씩 무조건 잔업이 있다. 다행히 잔업 수당은 1.5배로 계산된다. 당연한 건데도 "다행이다"라고 생각하고 있는 내 자신이 조금 씁쓸하다.출근은 8시 반인데, 점심시간은 1시다. 오전 시간이 너무 길다 보니 12시쯤 되면 정말 배가 고프다. 아침잠이 많아서 아침을 못 먹고 다니는데, 1시까지 기다리는 게 정말 고역이다.점심 메뉴는 솔직히 말해 너무 맛이 없다. 차라리 편의점 삼각김밥이 나을 정도로… 그런데 기장님들이 나한테 자꾸 밥을 더 주신다. 진짜 먹기 싫은데, 억지로 받아먹고 있다.

월급과 근무 환경

토요일도 무조건 출근해서 12시 반까지 일한다. 토요일 잔업 역시 수당 1.5배로 계산된다. 작년까지만 해도 주말에도 저녁까지 일하고 일요일까지 출근했다고 하는데, 올해부터 일이 조금 줄었다고 한다.월급은 그냥 다른 공장들 기본 월급 수준이다. 친구 말로는 예전에 이 공장은 한 달 내내 야근하고 주말에도 풀타임으로 일했다고 하더라. 지금은 그래도 많이 나아진 거라고.

후회와 현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공부에 미치고 싶다. 직업에 귀천은 없다고 하지만,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 그만두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 참으며 버티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버티다 나이만 더 먹을까 봐 두렵다. 내가 이렇게 살고 있는 게 너무 답답하다.하고 싶은 것도 없고, 특별한 기술도 없는 내게는 모든 게 욕심이고 사치인 것 같다. 이런 얘기를 친구들에게 하면 "그 나이에 아직도 철이 안 들었냐"고 한다. 그런데 철든다고 달라질까? 이런 육체노동, 누구라도 하고 싶지 않을 거다. 니들이 해보던지! 라고 말하기엔.... 친구들은 공부를 너무 잘했다. 뭐, 할 말이 없는 거지. 푸하하…

슬픈 일요일 밤

굉장히 외롭고 쓸쓸하고 공허하고 슬픈 일요일 밤 11시 20분이다. 출근해야 하니 이제 자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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